올 4월 ‘휴(Hugh)의 한국말로 영어하기’(이비컴)란 책이 출간됐다. 저자는 호주에서 목사로 활동 중인 한국인 휴 박(52·한국명 박웅걸). 고만고만한 영어학습서가 홍수를 이루는 서점가에서 옥석(玉石)을 가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한번쯤 정독할 만하다. 일단 글쓴이 자신이 19년간 영어권 국가에서 생활하며 체득한 영어정복기란 점에서 그렇고, 기존의 영어학습서와 사뭇 다른 주장들이 풍부한 예화와 함께 제시돼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박씨는 원래 음악도였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피아노와 성악을 배웠고 이후 음악을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대학(한양대)에서도 성악을 전공했다. 그러나 20대 중반에 성대에 이상이 생겨 음악을 포기해야 했다. 한동안 방황했던 그는 정신을 차린 후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신학대학원에 다니면서 경기 과천의 한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했는데 당시 그 교회엔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가 많았다. 그때 경험이 ‘영어의 벽’을 느낀 계기가 됐다.

1991년, 그는 서른넷의 적지않은 나이에 호주 유학을 결심했다. 처음엔 1~2년만 있다가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2년이 지나도 영어에 영 자신이 붙지 않았다. 영어로부터 해방되기는커녕 오히려 부담만 더 늘었다. 그는 오기가 생겼다. ‘한국어만큼 영어를 잘할 수 있을 때까지 안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후 반(半)호주인이 됐다. 매주 호주인교회에 나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성경모임에 개근하며 이 악물고 영어를 익혔다. 그 과정에서 ‘한국어로 영어하기’ 학습법을 고안했다.

그는 현재 시드니에 있는 라이드연합교회(Ryde Uniting Church) 담임목사로 있다. 호주인 교회지만 한국인과 이민족 등도 제한 없이 수용, 총 신도가 120명쯤 된다. 이 교회에 온 지는 올해로 6년째. 호주로 온 후 영어학원 한번 다니지 않았지만 그는 수준급 영어실력을 자랑한다. 호주 국회의 크고 작은 회의에서 통역을 맡는가 하면 호주 국회의원의 수행통역자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지난 12월 1일 시드니에 있는 그와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1시간30분에 걸친 인터뷰 내내 그는 “영어의 장벽만 극복할 수 있다면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앞서갈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며 제대로 된 영어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영어 벙어리’ 한국인 보며 책 출간 결심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는지. “영어 가르치는 일은 오래전 유학생 신분일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꾸준히 해왔지만 책을 쓰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계기가 있었다. 8년 전쯤에 호주로 어학연수 온 30대 중반의 한국 남성을 우연히 알게 됐다. 어학원에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1년쯤 지내다 돌아갔다. 귀국 전 송별회 겸 식사를 함께 하는데 그가 놀라운 고백을 했다. 자신이 한국 모 대학 영어강사 출신이라는 것이다. ‘평생 영어밖에 모르고 살았는데 스피킹이 안 돼 여기서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한인식당 두세 곳밖에 없었다’며 씁쓸한 표정을 짓더라. 그가 떠난 후 얼마 안 돼 피지에서 온 19세 여학생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현지 고교를 갓 졸업하고 무작정 시드니로 날아온 친구였는데 불과 한 달 만에 고급백화점 안내데스크 담당 직원으로 취직했다. 구어체 영어 구사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둘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 싶었다.”

그 일 이후 바로 집필을 시작한 건가. “아니다. 그 즈음 한국의 인터넷 포털 다음에 ‘세계엔(n)’이란 코너가 있었다. 유학생들이 자주 접속해 나도 즐겨 보곤 했는데 어느 날 한 유학생이 글을 올렸다. 미국 온 지 2년이 지났는데 영어가 안 늘어 괴롭다는 내용이었다. 도움을 주고 싶어 경험담을 섞은 내 나름의 해법을 댓글로 달았다. 이튿날 사이트에 다시 접속했는데 내 글을 읽은 이가 6만명 이상이었다.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호주 휴 목사가 말하는 영어공부법’이란 제목으로 글을 하나 더 올렸다. 그 글 역시 5만여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 주에 다음 전체 페이지에서 내 칼럼 제목이 검색어 1위에 올랐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자료 수집에 들어갔다. 관련 책을 사서 읽고 영어 잘하는 비영어권 국가 사람들도 여럿 만나 인터뷰했다. 한국 언어학자들이 쓴 책도 열댓 권쯤 사서 독파했다. 책을 완성하는 데 1년 반가량 걸렸다. 여러 모로 공을 많이 들였다.”

그는 수년 전부터 시드니 초등학교에서 종교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 photo 휴 박

책 출간 후 독자들의 반응은 어떤가. 가장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다면. “출판사를 통해 휴대폰 번호를 알아낸 후 국제전화를 걸어오는 독자가 많았다. 책 내용 중 ‘영어로 말할 때 알지도 못하는 남 얘기, 남의 나라 얘기 하지 말고 우리 가족 얘기, 우리나라 얘기부터 시작하라’는 부분이 특히 많은 공감을 얻었다. 자신의 관심사를 20~30개 레퍼토리로 정리, 영어로 스토리라인을 구성한 후 반복연습하라는 책 속 조언을 그대로 실천해봤다는 대학생도 있었다. 꼬박 6~7개월이 걸렸다고 하더라. 그렇게 익힌 내용을 알고 지내던 외국인 앞에서 써먹었더니 그 외국인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라고 했다. ‘하도 말을 안해 원래 조용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말이 많아졌느냐’는 것이다.”

한영사전이 훌륭한 영어교사

일명 ‘섞어영어’에 대한 주장이 흥미로웠다. “독자 중에도 섞어영어를 가족끼리 식사시간에 실험해봤다는 이들이 있었다. 모국어와 영어를 섞어 사용하는 섞어영어 방식은 엉터리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남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등 비영어권 국가에선 꽤 널리 사용되고 있다. ‘코드 스위칭(code switching)’이란 정식 용어도 있을 정도다. 한국인은 영어가 중요하다면서도 은연중 ‘그래도 영어는 외국어’란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그건 잘못된 태도다. 영어에 능숙한 비영어권 국가 사람들은 영어를 외국어가 아닌 ‘제2의 모국어’로 대한다. 영어를 ‘영어권 국가에 가서만 잘하면 되는 언어’로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한국인 중 해외 근무를 하거나 유학을 떠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국내에서도 자연스럽에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국인의 영어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쓰는 사람은 ‘건방지다’ ‘잘난 척한다’는 인상을 준다. “잘 알고 있다. 말끝마다 영어를 섞어 쓰면 한국에선 욕 먹기 십상이다. 그런데 나중에 영어 때문에 발목 잡히느니 차라리 지금 욕 먹는 게 낫다. 내가 섞어영어에 대한 확신을 가진 건 내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면서다. 연년생인 딸과 아들은 호주에서 태어났고, 초등학교 입학 전까진 한국어를 사용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들어가더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섞어영어를 쓰더라. 딸이 초등 3년, 아들이 초등 2년일 때다. 하루는 아내가 외출하며 아이들에게 빨래를 걷어 개어놓으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서재에 있었는데 신나게 놀던 아이들이 대화하는 걸 엿듣게 됐다. ‘누나, did you 빨래 갰어?’ ‘No, I forgot 빨래 갰어.’ ‘엄마 is going to 혼내 you.’ ‘I know. Let’s 빨래 개자, right now!’ 당시엔 웃어넘겼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섞어영어는 한국인이 영어를 잘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아닌가 싶다.”

한영사전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이제까지 영어학습에 적용해온 방식은 철저하게 영한(英韓)식이었다. 단어를 외울 때도 영단어를 먼저 본 후 한국어 뜻을 떠올려왔다. 그런데 영한식 암기법은 시험 치기엔 적합할지 몰라도 회화엔 치명적이다. 사고 자체가 한국어를 기반으로 하는데 어떻게 영어로 된 문장이 술술 떠오르겠나. 한영(韓英)식으로 공부하면 이런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구구단’을 먼저 떠올린 후 ‘mutiplication table’을, ‘정신병’을 떠올린 후 ‘mental illness’를, ‘살인사건’을 떠올린 후 ‘murder case’를 생각해낼 수 있다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웬만한 영어회화는 가능했을 것이다. 흔히 한영사전은 한국인이 만들어 신뢰할 수 없다고들 하는데 그 말도 틀렸다. 한영사전에 실린 표현의 99.9%는 실제 외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들이다. 제대로만 사용하면 훌륭한 영어교사를 모시고 사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인터넷사전이나 전자사전 대신 종이사전을 갖고 다니라고 충고했는데.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구식으로 비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 사전이나 전자사전이 안 좋다는 건 아니지만 종이사전의 학습효과가 훨씬 우수한 건 사실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영사전으로 ‘건망증(amnesia)’이란 단어를 찾는다고 할 때 전자사전을 이용하면 입력과 동시에 해당 단어가 떠오른다. 그렇지만 종이사전을 뒤지면 몇 차례 책장을 넘기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개의 단어를 접하게 되는데 이 과정 자체가 엄청난 부수효과(bonus effect)를 불러온다.”

‘시험영어’ 잊고 입밖으로 뱉는 연습을 

한국어로 문장을 만들고 그걸 영작해 사용하다 보면 한국적 정서에 빠져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에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한국어와 영어 실력의 간극이 엄청나다. 한국어는 수준급이지만 영어 실력은 원어민과 비교했을 때 유치원생보다 못한 성인도 허다하다. 그런 상황에서 처음부터 영어로 문맥을 잡아나가는 건 무리다. 그보다는 편안하게 한국어 문장으로 이야기를 만든 후 시간이 걸리더라도 영어로 옮기는 연습을 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21세기 영어에선 미국영어나 영국영어를 정통 영어라고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지구촌 영어(global English)다. 한 달쯤 전 호주 수상이 인도와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인도에서도, 싱가포르에서도 통역자 한 명 없이 편안하게 현지인과 인사를 주고받더라. 인도 특유의 발음, 싱가포르 특유의 악센트가 남아 있는 영어였지만 의사소통엔 전혀 지장이 없었다. 꼭 영미권 국가의 영어를 흉내낼 필요 있나. 한국인의 생각과 문화, 정서를 살려낼 수 있다면 오히려 매력적인 한국식 영어가 될 수 있다.”

영어를 잘하려면 뻔뻔해져야 한다고들 말한다. 수줍음이 많고 남 앞에 서길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방법을 쓰는 게 좋을까. “영어는 리듬어, 한국어는 음절어다. 한국말 하듯 영어를 말하면 상대방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 한국인에게 영어로 말해보라고 하면 단어와 문장이 입안에서 맴도는 경우가 대다수다. 일단 입밖으로 뱉는 게 중요하다. 영어학습 세미나를 진행할 때도 큰 소리로 영어문장을 두세 시간씩 읽어나가는 연습을 꼭 한다. 내 앞에 또 다른 내가 있다고 상상하고 최소한 10㎝ 앞까지 내가 뱉은 영어가 도달한다는 느낌으로 말해보자. 한국인이 영어로 말할 때 수줍어하는 건 ‘시험영어’에 치중한 영어교육 때문이다. 영어를 과목(subject)으로 생각하고 시험용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말할 때도 시험 보듯 ‘맞을까, 틀릴까?’에 연연하는 것이다. 당신에게 두 살짜리 아이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한창 말을 배울 때 문법이니 발음이니 등을 지적한다면 제대로 입도 떼기 전에 언어적 자폐증에 걸릴 것이다. 이제까지의 한국식 영어학습은 언어적 자폐증을 불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영어 사교육비 규모가 20조원에 육박한다는 통계가 있었다. 영어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은 없을까. “한국 못지않게 영어교육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도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나라가 한 곳 더 있다. 일본이다. 일본은 한국인이 해외 어학연수에 눈을 돌리기 훨씬 전부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영어학습을 위해 외국으로 떠났다. 일본이 36년간 한국을 통치하며 한국 땅에 심어놓은 나쁜 것 중 하나가 일본식 영어교육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이 지금 영어를 배우는 방식이 전부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엔 ‘영어 사교육비’란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는 나라들이 많다. 인도와 필리핀이 대표적 예다. 그 나라 사람들은 시장바닥에서 좌판 깔고 장사하는 사람들도 영어에 두려움이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일상생활 속으로 영어가 흘러들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나홀로 조기유학’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미취학 아동의 조기유학이나 대학생 해외 단기연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영어를 일상에서 체득할 수 있다는 점에선 분명히 효과적이다. 그러나 조기유학의 경우,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잃는 게 너무 많다. 특히 ‘나홀로 유학’은 위험하다. 부모의 사랑, 형제 간 우애 등을 모두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학기간이 길어지면 한국에 돌아오지 않으려 한다는 점도 문제다. 한국으로선 인재 유출에 따르는 손해가 막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자녀의 조기유학을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유학기간은 최대 2년을 넘지 않게 하라’고 충고한다. 단기연수를 계획하는 이들에겐 충분한 사전준비를 당부하고 싶다. 호주를 찾은 한국 연수생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 중 하나가 ‘처음 6개월간 배우는 건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현지 어학원 중엔 시설이나 커리큘럼이 한국보다 못한 곳이 많다. 심지어 ‘She is…’와 ‘There are…’ 같은 조합을 가르치는 곳도 있다. 꼭 영어연수를 해야겠다면 한국에서 기본 회화실력 정도는 익혀서 오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야 하다못해 현지 아르바이트 자리 구하는 것도 쉬워진다.”

호주 국회 닐(Nile) 상원의원의 통역관으로 활동하던 당시의 휴 박(왼쪽). / photo 휴 박

책에 제시된 여러 가지 영어학습법 중 개인적으로 가장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영어일기 쓰기나 가족끼리 섞어영어로 대화하기 등은 당장 시작할 수 있으면서 효과가 높은 방법이다. 그중에서도 딱 하나만 고르라면 일상생활에서 사용빈도가 높은 한국어 단어를 한영식으로 정리, ‘나만의 단어장’을 만들어보라고 하겠다. 두통·편두통·복통 같은 건강 관련 용어, 정치적 변수·문화적 오해 같은 관용어 등 평소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를 메모하고 한영사전을 참조해 정리해두면 연상작용을 일으켜 절대 까먹지 않는다.”

영어학습과 관련, 요즘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또 다른 영어 관련 책을 낼 의향은. “목회활동을 하면서도 틈틈이 호주를 찾은 한국인에게 영어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다른 교회와 연계해 유학생을 위한 영어학습 세미나도 종종 연다. 지난주에도 브리즈번에서 세미나가 있었다. 내년부터는 한국에도 좀 더 자주 갈 생각이다. 영어실력이 단기간에 늘 순 없기 때문에 2~3일에 걸친 심화 프로그램을 만들어 전국을 돌며 세미나를 진행할 계획도 갖고 있다. 영어로 말문이 트이는 경험을 하게 하자는 게 목표다. 책도 계속 쓰려고 한다. 지금 관심 갖고 있는 주제는 가칭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치는 섞어영어’다. 미취학 자녀에게 어릴 때부터 ‘외국어로서의 영어’가 아니라 ‘일상어로서의 영어’를 가르칠 수 있도록 부모가 돕는 개념의 학습서다. 시간이 된다면 ‘한국말로 영어하기’의 워크북도 만들어보고 싶다.”  

‘휴 박의 한국말로 영어하기’ 실전 가이드 5

1. ‘나만의 상황영어’를 만들자

소가 풀을 되새김질하듯 나의 과거 경험과 상황을 천천히 음미하며 영어로 재구성해본다. 예를 들어 ‘며칠 전 갑작스레 내린 비에 흠뻑 젖었던 일’을 영어로 말하고자 한다면 △5개 내외의 한국어 문장으로 당시 상황을 정리하고 △각각을 영작한 후 △영어만 따로 묶어 여러 번 소리내어 말해보는 식이다. ‘연인과 헤어졌던 상황’ ‘머리 감는 상황’ ‘아침에 아이들을 깨우는 상황’ 등 본인에게 친숙한 에피소드를 골라 적절한 길이의 영문으로 옮겨 동일한 방법으로 연습을 계속한다.

2. 단어 암기는 ‘한국어→영어’의 순서

영어회화를 잘하려면 우선 하고 싶은 말이 영어로 떠올라야 한다. 그러려면 기존에 해왔던 것처럼 영어를 한국말로 옮기는 훈련 대신 한국말을 영어로 옮기는 훈련을 강화해야 한다. ‘poverty’ 하면 ‘빈곤’이 떠오르는 식의 어휘 학습법은 독해나 번역엔 유용할지 몰라도 영어 대화엔 도움보다 방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치질은?’ ‘말썽꾸러기는?’ ‘여드름은?’ ‘생활비는?’ 하는 식으로 자주 사용하는 한국말을 먼저 떠올린 후 적합한 영단어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단어를 공부해보자.

3. 한영사전을 끼고 살아라

한영식 영어학습을 위해선 한영사전이 필수다. 단, 되도록이면 종이사전을 활용한다. 짧은 시간에 원하는 단어를 찾고 사전을 덮는 게 좋다, 사전의 도움 없이 영문을 읽는 게 좋다는 이들도 있지만 내 경험으론 그렇지 않다. 한영사전의 페이지를 앞뒤로 넘기며 목표단어에 도달하기까지 두뇌에 스쳐가는 많은 단어와 표현은 책 형태의 사전이 아니면 결코 얻을 수 없는 수확이다. 사정이 허락한다면 큰 사전과 소형 사전을 각각 구비, 전자는 집에 두고 후자는 휴대하며 공부할 것을 권한다.

4. 한국어 지식을 최대한 활용하라

호주에서 생활하다 보면 영어와 한국어 표현이 신기할 정도로 유사할 때가 많다. ‘내가 노파심에서 말하는데(I’m saying like an old lady)’ ‘무소식이 희소식(No news is good news)’ ‘탁상공론(desk theory)’ ‘피는 물보다 진하다(Blood is thicker than water)’ 등이 대표적 예다. 나는 19년간 호주에 살면서 지구촌의 7000여개 언어도 원래는 하나에서 출발했을 것이란 가설을 경험과 확신으로 믿게 됐다. 한국어와 영어의 뿌리가 하나라면 영어 정복의 비결은 한국어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굳이 한국어 표현을 지우고 영어 표현에만 집착할 필요가 없다.

5. ‘섞어영어’ 사용을 두려워 말라

호주의 어린 한인 교민 자녀들은 다음과 같은 문장을 자주 사용한다. “Mom told me 빨리 자, but I haven’t finished my 한국말 일기 쓰기 yet.” “아빠, 오늘 저녁 can we go to 한국식당? I feel like 떡볶이 엄청 now.” 영어도 아니고 한국말도 아닌 이른바 ‘섞어영어’식 표현이다. 그런데 이런 형태의 영어표현이 갖는 특이한 효과가 있다. 영어가 한국말 속으로 들어와 일상어(everyday language)화된다는 것이다. 완전한 영어문장이 아니면 입도 뻥긋 못한다고? 지금부터라도 한영사전을 갖고 다니며 그때그때 생각나는 영어단어를 한국말에 섞어쓰는 연습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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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혜원 기자 happyend@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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